NGO활동

[태국 메솟의 버마 난민촌 방문기]

부천시민신문 2006. 7. 28. 14:24
 

“퇴로 없는 국경지대 사람들-그래도 파랑새는 있다(1)”


버마 속의 코리아 스쿨 ‘메타오 고등학교’

버마에 전달할 물품을 갖고 출발을 기다리는 방문단

방콕공항에서 합류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팀과 ~

 

버마(현재 버마의 국가명은 ‘미얀마’로 불린다. 그러나 많은 버마인들은 국민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이 국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버마로 표기한다)와 태국 사이, 한 10분이면 헤엄쳐 건너기에 충분한, 폭좁은 작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버마를 떠나온 버마 사람들은 조국이 바라다보이는 태국 국경지대에 모여 산다. 자유를 잃는 것보다는 조국을 버리는 것을 택한 사람들, 아니 조국으로부터 밀려나 세계인 속에서 다행히 ‘난민’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이들은 고향을 바라보며  태국 땅 ‘메솟’에 둥지를 틀었다.

 

메솟에는 미얀마 군사독재정권의 정치탄압과 인권유린을 피해 나온 20여만명의 난민이 거주하고 있다. ‘난민’이란 지위 때문에 직업을 구할 수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먹을 것조차 구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그들은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피해자는 역시 어린이들이다. 메솟에 살고 있는 어린이는 대략 2만여명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2천여명만이 20여개의 교육을 받고 있을 뿐 나머지는 교육시설 부족, 언제 닥칠지 모르는 납치와 연행 등으로 방치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은 군부 독재정권에 부모를 잃거나 인신매매, 강제노동, 아동징병, 마약운반, 성매매 등에 노출되어 있다.


‘버마 민주화와 난민촌 어린이 교육지원을 위한 부천시민모임’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7월 13일부터 19일까지 메솟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의 주요목적은 난민촌 실태조사를 겸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의 지원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김범용 소장은 이번 방문 목적에 대해 “메솟 난민촌의 실상과 더불어 각 학교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일임”과 더불어 이러한 지원은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방치하고 있는 버마 민주화를 앞당기고 아시아의 평화 정착에도 기여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은 2002년말 지원금이 끊겨 더 이상 학교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메일을 받고 그동안 버마 이주노동자 단체와 함께 난민촌에 있는 유치원 1곳과 초등학교 2곳에 매달 운영비 20만원씩을 지원해 왔다. 또 2005년 6월부터는 부천지역을 중심으로 지원 모임을 조직해 난민촌에 최초의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학교운영비로 매달 1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과 더불어 메솟의 실태를 국내에 알려 올해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메솟 난민촌에 2억6천만원의 해외 교육지원을 이끌어내었다. 이 금액은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이 받은 가장 많은 외부 지원금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이번 방문단에는 김범용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소장을 비롯해 이정심 실무자, 김은혜 여성신문사 부천지사장(겸 부천외노 운영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진선미 배분분과 실행위원과 황후영 사업본부 배분팀장, 서헌성 원혜영 국회의원 비서관, 버마 NLD한국지부 내이툰 나잉 총무, 그리고 취재단으로 손지현 드림씨티 방송 기자와 본지 기자가 동행했다. 현지에서는 부천외노에서 파견한 전필교 코디네이터와 쪄툰 씨의 안내를 받았다.  


방문 첫날인 14일 처음 방문한 곳은 메타오 고등학교.

이름 모를 열대지방의 수목림이 친근하게 펼쳐진 넓은 농경지대를 배경으로 건물 한 채가 덩그라니 서있다. 시멘트 담벼락을 지나 정문에 도착하자 버마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우리나라 시골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던 그 태극기처럼, 이곳에서도 여전히 바람에 펄럭이며 학교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

학교 관계자들과 마주앉은 방문단

루퍼트 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진선미 실행위원(왼쪽 끝)과 황후영 배분팀장(오른쪽 끝)이 루퍼트 교장(오른쪽에서 세번째)과 클레밍 부교장(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에게 '사랑의 열매'를 달아주고 교무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메타오 고등학교는 2005년 2월 메솟 난민촌 교육지원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방문한 부천시민 현지방문단이 현지실태를 돌아본 후 그 해 6월 설립, 개교했다. 한국에서 지원하는 학교로 알려지면서 이곳에서는 ‘코리아 스쿨’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공장을 개조해 만든 교사(校舍)는 유난히 천정이 높은 1층 건물이었다. 교실 하나는 부족한 기숙사 공간을 메우기 위해 2층을 올려 잠자리와 수업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기숙사로 쓰이는 교실에는 모두 2층 침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한 침대에서 아이들은 밥도 먹고 책도 보면서 유일한 사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교실에선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작은 책상에 올려놓은 교과서와 노트를 오가며 열심히 받아적기도 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며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앉아있는 모든 책상에는 빨간 사랑의 열매와 함께 “이 물품은 한국 국민들의 성금으로 마련됐음”을 알리는 짤막한 영문을 담은 작은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한 교실 벽면에는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그린 민화를 비롯해 교실에서 행동하는 법 등을 담은 교실 수칙이 적혀 있다. 그림들은 오정구에 있는 고리울 청소년문화의집 소속 청소년들이 방문해 이곳 학생들과 함께 그린 것이라고 했다.


이 학교의 학생은 남학생 103명, 여학생 67명, 교사가 20명이다. 교장과 함께 여동생인 클래밍씨가 부교장을 맡아 아이들과 함께 기숙사에 기거하며 사감에서 급식준비까지 전반적인 관리를 맡고 있다.


사무실에서 방문단과 학교 관계자들이 허심탄회하게 마주 앉았다. 사실 메솟 난민촌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대부분 초등학교이고, 이 학교도 7학년 밖에 없던 것을 부천외노의 지원으로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10학년까지 교육이 가능해졌다. 한국 국민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일궈낸 큰 성과에 모든 참석자들은 힘찬 박수를 쳤다.


이날의 주요 협의사항은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 대신 학교 부지를 매입해 건축하는 것. 장기적으로 이 비용이면 학교 건물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제안에 비싼 임대료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학교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졸업 후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 직업 교육이나 어학교육에 특히 치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 곳 학생들은 졸업을 해도 난민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하는 것이 매우 힘든 상황이다. 또 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면 대학 진학이 사실상 어렵다. 힘들게 교육을 받아도 노동자를 벗어 날 수 없다. 아니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가장 잘되는 것이 이 학교의 교사로 남는 일이다. 실제로 이 학교 교사 중에는 학생인지 교사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앳되고 나이어린 교사가 심심치않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보다 더 큰 뜻이 있다. 버마로 돌아갈 수 없고 당장 쓸 수 없다해도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된 조국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버마 난민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서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것, 코리안과 버마인이 아이들을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양국간의 우정을 깊게 하는 것”이 이 사업의 궁극목적임을 역설한 김은혜 운영위원의 마무리 발언으로 토론을 마치고 방문단은 선물과 기금을 전달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에게 빨간 사랑의 열매를 직접 달아주며 이들의 노력과 활동에 감사를 표시했다. 


이어진 점심시간. 학생들은 각자 준비된 그릇에 밥과 닭고기 스프를 담은 다음 교실이나 숙소에서 먹은 후 빈 그릇은 다시 수돗가로 가져다 놓았다. 이곳에선 닭고기 스프도 3회 이상 뜨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다른 반찬이나 후식은 없었다. 한참 성장기인 아이들에게 이 정도의 식사로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은 한국적 사고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무튼 그곳에선 비만을 고민해야 할 학생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여학생 기숙사

학생들의 교과서와 노트

기숙사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여학생. 반찬이라곤 세 숟갈도 덜을 수 없는 닭고기 요리 뿐이다.

밥을 떠가는 남학생. 얼굴에 바르는 것은 멋을 내기 위한 치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