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활동

[태국 메솟의 버마 난민촌 방문기]

부천시민신문 2006. 7. 31. 13:39
 

“퇴로 없는 국경지대 사람들-그래도 파랑새는 있다(3)”


메솟의 초등학교와 유치원, 멜라 난민촌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부르는 세타나 어린이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공교육의 시작이면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을 교육하는 곳이다. 때문에 학교단위에서 그 수가 제일 많다.

메솟에서는 나이에따라 5~7세 아동이 다니는 유치원, 8~13세 초등학교, 14~19세 중·고등학교로 대강 나눠져 있었지만 난민촌이란 특수한 상황 때문에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는 듯했다.

학교는 세타나 초등학교, CDC 초등학교처럼 일정한 지역의 어린이들을 입교시키기도 하지만 멜라 난민촌의 야뭉나 유치원, SAW(에이즈 감염 여성과 아이들이 사는 곳)의 초등학교, 블루 스카이 초등학교(일명 ‘쓰레기 학교’)처럼 대부분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역 안에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학교 건물이나 시설 역시 편차가 대단히 컸다.

멜라 난민촌의 학교나 ‘쓰레기 학교’의 교육환경은 일제 식민지시대 우리나라의 야학이나 정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마련됐던 비정규 교육시설을 방물케했다. 날씨가 더운 지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교는 울타리만 있는 건물에 여럿이 앉을 수 있는 긴 나무 책상과 의자, 그리고 앞에 걸려 있는 칠판이 전부였다. 학년 구분 없이 아예 교실이 하나 뿐이거나 형태상으로만 분리된 것을 나타낼 정도로 겨우 칸막이(방음도 안되고 시야도 가려지지 않는)만 친 곳이 많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역시 나이가 어린 사람이 많았다. 교사들은 버마 교육령에따라 정식 교사자격증을 발급 받을 수 없는 상황과 더불어 태국의 대학에 진학하기도 매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대략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 가운데 자체 교사 연수를 받은 사람을 교사로 임명하고 있었다. 일례로 전세계에서 답지한 후원금을 메솟 지역 내 37개 학교에 배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BMWEC 학교에서는 교사들에 대한 연수도 담당하고 있었다.


세타나 어린이들의 ‘7월의 크리스마스 캐롤송’

 

 

  

가장 먼저 방문한 세타나 초등학교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2004년 1월부터 매달 20만원씩 지원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상황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2층 건물에 위치한 교실에 들어서자 파란색 반바지에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30여명의 어린이들이 여러 곡의 동요로 방문단을 환영해주었다. 노래에 맞춘 깜찍한 율동과 해맑은 표정에서 이들이 처한 정치상황이나 현실은 잠시 잊어지는 듯 했다. 아니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이 아이들 앞에서 정치권력이나 이념을 앞세워 이것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억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새삼 깨닫게 했다.

5~12세 어린이 71명이 재학 중인 세타나는 2003년 8월 개교했으며, 버마어·영어·수학 등의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은 월~금요일까지 주 5일이다. 메솟에서는 거의 모든 학교가 주 5일 수업을 하고 있었다.

5세부터 입학하기 때문인지 초등학생임에도 유치원생에 가까울정도로 매우 어려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린이들은 귀에 익은 ‘꼬마 인디언’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캐롤송까지 열심히 공연을 해주었다. 메솟에서 본 어린이들 가운데 세타나의 어린이들이 가장 밝고, 천진난만한 동심의 표정이 살아있었다. 

우포초 교장은 그의 부인을 포함해 3명의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젖먹이 아기를 안은 채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우포초 교장 부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재학생의 과반수가 넘는 학생들이 결석한 것이 이상해 안내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는 답변을 꺼려했다. 난민촌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결석이 잦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태국 및 버마 경찰들 때문에 이들은 어디에서든 안전할 수 없다. 부모에게 일이 닥치거나 그런 조짐만 보여도 이들은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 또하나 질병이다. 의료시설이나 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이곳은 단순한 질병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화를 키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김범용 소장은 포초(Phocho) 교장에게 “아이들을 잘 키워줘 고맙다”는 감사의 말과 함께 부천 소림유치원과 녹색가게에서 기증해준 아이들 옷을 전달했다. 귀여운 캐릭터와 모자가 달린 흰색 점퍼가 이곳 아이들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방문단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는 어린이들

blso중학생(사촌지간인 소녀들)


다음 방문한 곳은 BLSO 학교였다. 이 학교는 2층으로 된 작은 건물 2개동을 갖춘 학생수가 제법 많아 보였다. 방문단이 도착했을 때 학생들은 모두 수업 중이었고, 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굵은 비를 맞으며, 2층 사무실로 안내돼 학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995년에 메타오 클리닉 근처에서 설립된 이 학교는 1997년 작은 학교로 시작해 현재 500여명에 이르는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학교 소속의 중등학교는 100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메타오고등학교와 더불어 3개 학교가 한 영역을 이루고 있다. 26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유치원도 개설돼 있다. 


딴독(Than Doke) 교장 선생님의 학교 소개와 환대에 김은혜 운영위원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선생님을 만나 감사하다. 도움은 비록 적지만 한국인의 깊은 정성을 모아 온 것으로 교육지원 활동을 통해 아시아의 평화와 버마의 민주화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기념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쳤다.


다음날인 15일 오전에는 멜라 캠프(Mella Camp)를 찾았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30여분 가까이 달리자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조금은 삼엄해 보이는 멜라 난민촌을 찾았다. 우리들의 신분보장을 위해 메타오 고등학교의 클레메 부교장이 동행해 주었다. 원래 이곳은 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도로는 잘 닦여 있었고 우리나라의 2차선 정도의 넓이로 나 있었다. 양옆으로는 야자나무를 비롯해 이름모를 열대식물들이 꽉 들어찬 그야말로 열대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숲속에 인간의 존엄을 억압 당하고 무기력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5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이율배반처럼 느껴졌다. “누가? 감히 무슨 이유로 그들을 제약하는가?” 마음 속에서 분노의 파고(波高)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대부분 카렌족인 거대한 난민촌인 멜라 캠프에는 학교와 공동 우물, 공동 화장실이 있어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할 수 있고, 난민 신분인 이 지역 사람들은 아무런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이곳의 모든 관리는 방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민간단체들의 컨소시엄인 BBC(Burma Border Consortium)에서 맡고 있다. 이들은 난민촌 내부를 Zone(지역)과 Section(지구) 등으로 분류해 각 NGO 단체들에 할당하고 있으며, 각 단체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에 필요한 물품이나 식량 등을 지원하고 있다. 식량 등은 유엔 난민기구에서도 지원하고 있다.


입구를 지나자 흡사 예전의 신림동 쪽방촌을 연상케 하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산등성이부터 마을 중심까지 형성돼 있었다. 집은 모두 지붕을 열대나무 잎을 엮어 만든 누더기집으로 재료만 다를 뿐 우리나라의 초가집이나 너와집과 비슷했다. 날씨가 더워 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벽은 뚫려 있거나 나무를 가로질러 놓은 곳이 많았고, 벽을 만든 곳은 흙을 바르고 벽지를 부쳐놓았다.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하지도 않고, 추운 겨울이 없다는 것도 이들에겐 그마나 다행으로 느껴졌다. 마을을 연결시키는 길은 우리네 시골 동네를 연상시키는 비포장의 골목길이 고작이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비가 오락가락 하기 때문에 길은 대부분 젖어 있었고 질퍽거리는 곳이 많았다.

야뭉나 유치원 입구에 선 방문단

 

야뭉나 어린이(얼굴에 바른 것은 우리나라의 화장처럼 치장을 한 것이다)

유치원 내부와 어린이들

방문단을 위한 어린이들의 환영 공연(앞쪽 어린이의 장난치는 모습에서 동심이 엿보인다)

물놀이를 하는 난민촌 어린이들


처음 들른 곳은 야뭉나 유치원(Yam Mon Primary School)이었다. 멜라 캠프 A.3 지역에 위치한 유치원은 7~8평 남짓한 교실에 30여명의 어린이들이 모여 있었다. 여자 어린이들은 빨간 치마에 흰 블라우스, 남자 어린이들은 빨간 반바지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방문단을 위해 준비한 노래로 환영해 주었다. 몇몇 어린이들은 방문단이 왜 왔는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에는 관심이 없다는 양 옆에 앉은 친구와 장난을 치며 율동을 따라하고 있는 모습에서 천진난만한 동심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몸보다도 휠씬 큰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새옷이 신기한 듯 자꾸만 만져보고 들여다 보았다. 이 교복은 방문단이 도착하기 며칠 전 한국에서 보낸 지원금으로 만들어 입흰 것이라 했다. 이곳에서의 교복은 신변 안전과 소속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해주어야 할 물건이었다.   

방문단은 준비한 후원금과 기념품을 전달하고 아이들과 섞여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잠깐 동안의 인사에도 정이 들은 양 고사리손을 흔들며 잘가라는 인사를 대신해 주었다. 아이들 중에는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듯 호기심을 나타내며 만져보기도 하고 어느새 사진용 포즈를 취해 웃음이 절로 번지게 했다.


사실 이날은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는 쉬는 날인데 방문단을 위해 특별히 등교를 한 것이었다.

2000년 설립된 야뭉나 유치원은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의 자녀이거나 멜라 난민촌에 거주하는 카렌 족의 아이들로 7세 미만까지 입학하고 있다. 현재 학생수는 1백여명. 학교건물은 전체 40~50여평 규모로 교실과 주방으로 분리돼 있다. 출입구에 비치된 벽장에는 이불과 베개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을 뿐 어린이들의 교육교재나 놀이기구, 장난감 등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무무쏘우(Mu Mu Soe) 교장과 8명의 교사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버마어를 비롯한 어학과 생활지도, 놀이를 가르치고 있다.

 

 

축구를 하는 F.S.P학교 어린이들

김은혜 운영위원은 학교 관계자에게 손수건을 선물했다.


야뭉나 유치원에서 나와 가파르고 질퍽한 언덕길로 한참을 올라갔다. 그곳에는 예전의 우리나라 교회에서 개설했던 여름성경학교나  야학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한 초등학교 교실과 만날 수 있었다. 이곳 역시 토요일이라 학생들과 만날 수는 없었다. 통나무로 지은 교실은 20~30평 정도의 규모로 나무를 깍아 만든, 긴 책상과 의자가 함께 고정된 채 2줄로 15 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책상 1개에는 3~5명 정도는 충분히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생들 대신 칠판에 써있는 "WeLCome to the F.S.P School Opening" 이라는 글귀와 짧은 그림들에서 상징적으로 이 학교에 대한 설명을 엿볼 수 있었다. 천정 가까이에는 우리나라의 김구 선생에 해당하는 민주운동가의 사진이 2점 걸려 있었다.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자부심이 강하고 교사들 역시 학생지도가 엄격해 학교에 올 때는 반드시 교복을 갈아입고 단정하게 등교할 정도라고 한다.


학교에서 내려오는 길에  마을 풍경을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마을 중심으로 여겨지는 곳에는 작은 영화방도 있었고, 야채가게나 공산품을 파는 가게도 형성돼 있었다. 대부분 물품은 몇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지뢰밭에서 입은 부상으로 하반신을 잃은 한 장애인 아저씨가 진열대 난간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2층의 한 곳에서는 물레를 돌려 옷감을 짜는 여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난민촌의 주택

공동수돗가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녀

 


공동 수돗가에서는 더운 날씨를 참지 못한 채 천으로 가슴 부위와 하반신만 가린 엄마와 딸이 빨래를 하고 긴 머리를 감으며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들 모녀는 낯선 이방인들에게 경계보다는 평화로운 웃음을 보이며 우리의 카메라에 멋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워낙 더운 지방이라 그런지 지하수였지만 우리나라에서 맛보는 물처럼 그렇게 시원하진 않았다. 

엄격한 통제지역이라 마을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던 점이 매우 아쉬었다.    

 

포레이 교장(왼쪽)과 전필교 부천외노 현지 코디네이터

기숙사 전경과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

체육관에서 탁구를 치는 학생들

학교를 후원하는 외국인 여성과 포레이 교장

 

15일 오후 4시(현지 시각), 방문단은 BMWEC(Burmese Migrant Worker's Education Committee) 학교를 찾아갔다. 밖에서 보기에도 이 학교는 현대식 건물로 잘 지어진, 규모가 꽤 큰 학교로 학생들의 기숙사와 수업을 받는 교사(校舍)가 따로 위치해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운동장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학생들은 1층 강당에서 탁구를 치고 있었다. 기숙사 내부 각 방에는 침대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학교현황에 대해서는 자료로 받기로 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10년째 학교 경영을 맡고 있는 포레이(44, 여) 교장은 주로 학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학교 건물은 캐나다의 지원(민간단체로 추정)으로 마련되었고, 운영자금을 계속 지원할 수 없었던 캐나다가 철수한 후 포레이 교장이 맡아 주로 전세계로부터 답지하는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고아를 비롯해 도움의 손길을 얻지 못한 아이들과 교사를 교육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이곳은 메솟 내 49개교(학생 수 6천여 명) 가운데 37개교에 매달 정기적으로 운영비와 학용품 등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5개교에는 비상시 지원을 하고 있다. 또 400여명의 교사를 배출, 교육시키는 것을 포함, 지원금 및 물품 재분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후원금이나 물품은 지원금 배분위원회에서 각 학교로 배분하는데 위원은 메타오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신시아 마웅 박사와 포레이 교장을 비롯해 교장·부교장 등 지역인사 9명으로 구성돼 있고 의장은 포레이 교장이다. 실행위원은 BMWEC 스쿨에 근무하고 있는 7명의 교사가 맡고 있으며, 재정보고는 지원금을 받은 학교로부터 자료를 받아 BMWEC에서 후원단체로 보고서를 보낸다고 한다.   

포레이 교장은 마지막으로 한국공동모금회와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매달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메타오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