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9일(목)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한승원 교수의 '역사와 작가의 사이에 들어 있는 원효'란 특강을 들었다.
앞서 문태준 시인의 '시정신과 오늘의 시'및 마광수 교수의 '문학과 카타르시스' 특강에서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 그 실망감도 컸었던 만큼 이번 강의에서는 그다지 기대를 덜 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의 강의 어투가 많이 어눌한 편이었음에도 이번의 특강에서는 상대적 만족감이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한 교수는 자신은 전남 장흥으로 귀향한 소설가로서 소설은 마치 하나의 병풍과 같아서 좋은 병풍은 그 접음새를 하나씩 펼칠 때마다 새로운 국면이 굽이굽이 펼쳐 보여 줄 수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소설에서는 반전이라 일컬으며 좋은 소설에서는 반전이 거듭 될수록 독자의 흥미를 끌어 낼 수있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실화 한토막을 소개 하였다.
그가 들려 준 한 실화로 고리 대금으로 500억이란 거금을 모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돈버는 노하우로는 일단 돈을 빌려 주고서는 돈 갚을 날짜에는 어디론가 사라져 나중에 돌아와서는 채무인의 담보물을 재판을 통하여 거저 삼키는 방법으로 떼돈을 벌었다.
허나 이 분의 일상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던지 아내와 자식도 모두 도망가 버리고 홀로 옥탑방을 하나를얻어 그 안에 사무실겸 거실로 간이침대 하나를 놓고 생활을 하면서 참새만한 여비서 하나를 두고 주로 자판기 커피및 골뱅이 캔에 소주, 라면을 주식으로 살다 보니 어느 날 몸이 무겁게 느껴져 병원에 가보니 간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되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일생 번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음 맞이하여야 하기에 이 고리대금업자는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임종 직전 자신이 번돈을 모두 써버리고 죽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비서에게 자기의 전재산 500억을 한장의 자기앞 수표로 끊어 오게 한 다음 여비서에게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빼오라고 시킨 후 여비서 앞에서 갑자기 500억짜리 수표 한장을 라이터 불로 태워 재로 남은 그것을 커피 잔에 타서 그냥 마셔 버렸다며 이것은 실화이라고 강변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실화이기에 소설로 쓴다면 이 글은 독자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되며 이것이 하나의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반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여비서가 그 고리대금업자에게 '그러실 줄 알고 아까 드린 수표는 제가 가짜를 드린 거예요.'라고 하면 하나의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다시 한번 더 반전을 맛보기 위해서는 그 고리대금업자가 '나도 그런 줄 알면서도 네가 어쩌나 보려고 한번 마셔본거야.'라고 말하면 또하나의 반전이 이루어진 셈인데 다시 살을 더붙여 '내가 일찌기 너희 어머니가 우환이 있으셔서 네집 가정 형편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너는 착하게 살았으니 내가 네 몫으로 얼마를 줄터이니 그걸로 생활에 보태고 나머지는 나를 대신해서 어려운 사회 단체에 환원을 해주게나.'라고 말을 한다면 다시금 반전이 이루어진 셈이다.
여기에 서양 속담에 '더러운 돈은 씻어 가지고 쓰면 된다.'라는 귀절을 응용하면서 비록 고리대금으로 더럽게 번돈이지만 좋은 곳에 사용하는 귀감을 독자에게 던져 주면 금상첨화의 소설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 속에서 원효는 고승이면서도 200편 정도의 책을 저술할 정도로 위대한 학자이기도 했으며 아깝게도 그의 저서는 많이 유실이 되어 현재 우리에게는 22권만이 현존하지만 그것을 통하여도 원효의 면면을 유추할 수 있다.
원효에 대하여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일부및 무려 590년이 지난 후 중 일연이 흘러 다니는 이야기를 모아 쓴 삼국유사가 있지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지금으로 부터 아주 먼 옛 이성계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과 같아 중 일연은 원효를 마치 신화적 글인 양 잘못 기록을 하고 있다.
그 후 1942년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에서 자신들의 전쟁 타당성및 독려를 위하여 춘원 이광수에게 원효에 대하여 한글로 6개월간 집필하게 한 것은 너무나 작위적이었다.
다시 말해 이광수는 당시 '원효대사'란 소설에서 '바람'이라는 산도적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바람이 원효대사를 잡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죽이겠다고 하자 원효는 도술로 가마솥 물을 차겁게 만들어 버리자 바람은 원효에게 무릎을 끓고 원효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고 이 바람은 신라의 장군으로 또 그의 부하들은 신라의 군사가 되어 황산벌 싸움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원효대사를 한낱 도술부리는 승려쯤으로 묘사를 하고 있으며 이광수는 조선총독부에서 원고료를 받고 쓴 관계로 삼국전쟁속 원효를 당시 전쟁을 치루는 일본을 미화하게 하는 친일적인 소설을 썼다는 평을 듣게 된 것이다.
한교수의 주장은 작은 땅떵어리인 신라가 백제, 고구려를 3한 통일하는 과정에서 신라 김춘추는 당태종과의 밀약거래를 통하여 당나라와 나당연합으로 전쟁을 이기면 청천강 이북의 고구려 땅 일부를 떼어주겠다는 야합으로 당시 삼국통일은 우리 고구려땅 잃기의 전쟁이였으며 당의 진짜 속셈은 백제, 고구려를 무찌른 후 마지막으로 신라를 궤멸시키므로서 우리나라를 통째로 삼키려는 계략이 숨어 있어으므로 삼국통일 후에도 신라는 다시 당과의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당시 신라의 골품제도는 인도보다도 심하여 김춘추의 할아버지는 3년만에 폐위될 정도의 연약한 왕으로 김춘추는 왕위쟁탈전에서도 한참 밀려 있었으나 어렵사리 쿠테타적으로 정권을 잡자 기반이 약한 정권을 반전시키고자 전쟁을 일으키게 되며 마침 중국에서도 정권 기반이 약했던 당태종이 정권 강화 차원에서 나당이 함께 삼국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삼국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원효는 저자거리에서 광대패를 중심으로 반전운동을 격렬하게 벌이게 되었는데 돌이켜 보건데 원효는 절대로 국가주의자가 아닌 반전주의자였으며 원효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통일이 아닌 불국토 통일을 염원했던 분이었다.
당시 전쟁 물자에 백성의 생활은 피폐화 되고 많은 남자들은 전쟁터에 동원이 되었으며 원효가 민중을 동원하여 반전시위를 버리니 김춘추 정권에서는 원효를 민중들에게 미쳤다는 헛소문을 내면서 원효에게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요석궁에 감금을 시켜버린 것이었다.
한교수는 만약 원효가 요석궁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그의 심한 반전시위로 인하여 김춘추, 김유신등이 그를 아무도 모르게 주살시켰을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 어찌되었던 원효는 요석공주와 우리나라 이두문자의 효시인 그 유명한 설총을 낳게 된다.
김유신은 자신의 둘째 여동생 문희를 김춘추에게 결혼을 시키고 삼국통일후 김춘추는 자신의 딸 지소를 김유신(지소의 외삼춘)에게 색공(色供;sex를 제공)을 하게 되고 그들 사이에서 원술랑이 태어났다.
원효의 '일심무애화쟁(一心無碍和諍)'이란 말은 '일심'은 부처의 마음으로 진리를 뜻하며, '무애'는 죽음도 막지 못할 정도로 걸림이 없이, '화쟁'은 진리 아닌 것들이 사라지게 함, 전쟁을 반대하며 기독교에서 여호와가 천국에 가려는 자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야 할 정도의 가난한 마음, 즉 불교의 청정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리이스에 '졸바' 춤이 유명하다면 원효 당시에는 시장에서 '무애'춤이 유명했었는데 '무애'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뜻하고 한번 깨달음을 '한소식했다'라고 표현하는데 한번 깨달음은 마음의 맑은 거울을 얻어냈다는 뜻이다.
혹자는 한소식을 하면 생불이라 칭하면서 경전도 안읽고 술, 고기도 먹으면서 세상을 거침없이 사는데 이것은 진정한 무애정신이 아니고 거울도 수시로 닦지 않으면 세상이 굴곡져 보이나니 항시 참선으로 청정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석가모니가 출타후 성으로 귀가해 보니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그를 보자마자 "나후라(羅喉羅)"라고 했다는데, 이것은 인도어로 출가하는데 장애가 된다하여 '장애' 또는 '아이고!'란 뜻으로 그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원효가 당나라로 유학을 가려다 두 차례를 실패했었지만 그가 중국에 가서 중국의 고승 삼장법사(손오공의 현장법사)의 제자가 노력을 했었으며 그가 스승으로 모시려 했던 삼장법사의 '성유식론(成唯識論性)'을 비판한 원효의 '판비론'은 원효가 논리학자및 논쟁가로 명성이 높아 일본은 물론 중국에 까지 역수출이 되었다.
유식(唯識)학은 원래는 인도에서 만들어진 학문이나 '하늘의 별빛은 내 눈빛(마음)이 별을 만든다.'라로 모든 만물은 마음으로 부터 나온다로 이 세상은 내 마음이 적극적으로 만들며 개조해 간다로 이해 될 수있을 것이다.
한교수는 이 세상에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그를 진라라 표현할 수있고 신자들의 시각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를 '여호와'로, 스님은 '부처', 이슬람교 신자는 '알라'로 부를 것이며 세상 이치는 '누가 한 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이 진리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고 설파를 한다.
김춘수 시인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꽃'은 '花'를 의미하지만 '華'는 비가시적인 '우주의 꽃'을 의미하고 불교에서 화엄(華嚴)경'은 '嚴'은 '장식'을 의미하며 즉, 우주의 꽃으로의 장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거지에게 돈을 주면 기독교에서는 하늘에 저축을 의미하고 불교에서는 나를 우주에 꽃 한 송이를 장식해 준 것이라는 설명이 되는 것이다. "華'는 '우주의 꽃'으로 '좋은'이란 의미이고 '화혼(華婚)'은 '좋은 결혼'이란 의미이다.
사실 기독교에는 성직자, 신자들이 여호와에게 영광을 돌리는 약속의 '장엄(莊嚴)미사란 것이 있는데 이는 불교용어가 원용된 것이다.
불교는 소승(小乘)불교와 대승(大乘)불교로 구분되지만 '승(乘)'은 수레를 의미하며 소승(小乘)은 '잘 먹고 혼자 수도하며 타고 가는 수레'를 의미하며 대승(大乘)은 우주보다 더 큰 수레로서 '새, 물고기, 벌레 등의 온갖 미물을 포함한 모든 중생을 싣고 가는 커다란 수레'를 의미한다.
원효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구중생(下求衆生)'의 위로는 불(佛)을 구하면서 아래로는 중생을 수레에 태우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좇았다.
속된 말로, 요즘 다빈치코드에서 마리아가 예수를 끌어 안은 우주의 자궁이라면 요석공주는 원효의 깨달음을 준 우주적 자궁이라 칭할 수있을 것이다.
여성이 우주적 자궁이라면 남성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같은 존재이고 성경상에도 아담이 갈빗대를 뽑아 이브에게 주어서 인지 현대의 많은 남성들이 옆구리가 시린데 시린 옆구리를 집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
요즈음 많은 남성들이 빌딩 숲을 오가며 식솔들을 위하여 힘든 일로 외로운 섬이 되어 미완성으로 남아 있지만 좋은 여성이 있는 집안에 들어 와서 재충전이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이 될 수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바다가 섬을 포용하는 좋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글쓴 이 :유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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