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민들의 참여와 자부심이 부천영화제의 힘”
11회 부천영화제를 지휘할 제4대 한상준 집행위원장(사진, 양주승 부천타임즈 기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회(위원장 홍건표 시장)는 12일 정기총회를 열고 지난해 말로 임기 만료된 이장호 집행위원장에 이어 한상준 수석프로그래머를 제4대 집행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지난해 1월 수석프로그래머로 부천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한상준 집행위원장은 올해 열리는 11회 영화제를 비롯해 2009년 말까지 영화제 개최의 지휘봉을 잡는다.
2년간 부산영화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위원장은 12일 수락인사에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화제는 내부적으로 일정부분 문제를 안고 있다. 부천영화제도 그런 이미지였는데 1년간 직접 느낀 바로는 다른 어떤 영화제보다 시스템적으로 잘 돼있다고 느꼈다”며 “그동안의 상처를 지혜롭게 극복한다면 건강한 영화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 위원장은 또 “부천영화제가 어떤 영화제로 나가고 있는지 분명한 방향을 알고 있다면 슬기롭게 이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며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또 중책을 맡겨주신 만큼 영화제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11회 영화제를 개최하는 올해, 부천영화제는 새로운 10년의 역사를 써나가야 할 시점에 와있다. 이런 점에서 신임 집행위원장의 역할과 책임은 대단히 막중하다. 특히 신임 집행위원장은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의 해촉으로 빚어진 2년여 간 파행을 거듭한 부천영화제를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야 하는 당면과제와 함께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가 공존한다.
신임 집행위원장의 부임으로 부천영화제의 위상 제고와 11회 영화제 개최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상준 집행위원장을 만나 영화제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신임 집행위원장에 위촉된 것을 축하한다. 소감을 말해 달라.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 지난 10회 때는 9회의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이번 11회는 정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습득한 것들을 순리에 역행하지 않고 실천한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잘 풀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한 해 수석프로그래머로서 가까이서 느낀 피판은?
-처음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은 영화제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1년을 거치는 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10년의 역사가 매우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도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일 역사가 2~3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지난 9회 때와 같은 사태가 있었다면 아마 영화제는 소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난히 두 번의 영화제를 치러냈다는 점에서 피판이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가 확고하다고 생각한다. 지리적으로 는 수도권 최대의 영화제로서 폭넓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능성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능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으로 본다.
▶피판에 대한 컨셉은?
-유럽의 전형적인 판타스틱 영화제들은 대개 호러 영화들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피판의 경우 호러 장르만을 영화제에 담기에는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이 정도 예산에, 이 정도 규모라면 그에 걸 맞는 컨셉을 지녀야 한다. 이런 면에서 스페인의 시체스 영화제가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피판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장르 영화제로서 그 주된 장르는 호러와 함께 SF, 그리고 스릴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전위적이고 도발적인 섹션, 그리고 장래의 관객들을 위한 패밀리 섹션 등이 보완된다면 부천영화제의 성격이 제대로 세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부산영화제에서도 근무했는데 부천영화제와 비교한다면?
-각기 장단점이 있다. 핵심은 그 제도를 어떻게 잘 운용해 가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부산영화제는 일의 진행이 빠르고 효율적이다. 많은 일들을 업무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몇몇 인물들(주로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이 수시로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천영화제는 견제와 균형을 토대로 하는 시스템의 측면에서 훨씬 앞서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앞서가는 시스템을 유연성, 탄력성을 기반으로 지혜롭게 운용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 해촉으로 빚어진 그동안의 피판의 파행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이러한 이유로 영화계에서 피판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
-여전히 영화인들과의 사이에 껄끄러움이 남아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분명히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다. 벌써 지난해와 올해의 여러 반응이 다르다. 이미례 감독이 새 조직위원회의 위원으로 복귀한 사실에서 잘 보이듯이 영화인들과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잘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은 감독, 배우 등의 영화인들 한사람 한사람과 친목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신작 한국영화 시사회 등 감독, 배우 등 영화 관계자들이 함께 하는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올해 영화제 개최 계획은?
-올해 영화제는 일단 적절한 규모로 치르고자 한다. 지난해는 10주년 기념으로 상영편수를 250편(단편 포함)으로 늘였으나 일정 부분 무리가 따랐던 것 같다. 올해는 적정규모인 200편 내외로 편수를 조절하려 한다. 특히 지난해 문제점으로 지적된 영사사고 등은 반드시 최소화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그리고 영화와 관련된 실습 행사를 활성화시키려 한다. 지난해의 웨타 워크숍과 비슷한 것 말이다. 또하나는 그동안 계속 시민회관에서 개·폐막식을 진행해 왔는데 올해는 날씨가 따라준다면 야외에서 개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야외에서 하면 좀더 많은 시민들이 참가할 수 있고 예전과 다른 분위기로 여름밤의 또다른 피판의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만, 영화제 기간이 비가 많이 오는 시점이라 고민이다.
▶부천영화제의 발전방향에 대해...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지역성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국제화와 지역성의 중시는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사항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훌륭한 영화와 더불어 지명도 높은 세계적 스타들이 많이 참가해야 영화제에 대한 부천시민의 자발적 호응도 역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훌륭한 영화와 세계적 스타들은 늘 그 영화제의 국제적 위상이 어떻게 되는가를 기준으로 참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판타스틱영화제 특성상 젊어야 하는데 이사진 뿐 아니라 조직위원들의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은가?
-올해 조직위원회는 많이 젊어졌다고 생각한다. 조직위원회는 상당 부분 영화제에 대한 책임감을 공유해야 하므로, 어느 정도는 나이가 든 인물들이 바람직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젊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영화제 자체의 활력을 높이는 일은 부단히 애써야 한다.
▶애로사항은?
-시설의 노후가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개·폐막 행사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음향, 조명 등 시설 보완이 시급하다. 대부분 국제영화제를 다녀보면 상영관의 타 시설과 달리 영상시설 만큼은 A급이다. 지난해 개·폐막작을 상영하면서 원작의 영상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아 출품 감독에게 정말 미안했다.
▶지금까지 영화인들은 ‘관’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 것을 줄곧 요구했는데, 지난해 이장호 전 집행위원장의 경우 많은 것을 수용하고 간섭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이 제기한 입체영화 제작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사무국-이사회-집행위의 적절한 견제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 것”이라는 표현은 원칙적인 사항으로 생각한다. 모든 경우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려 할 때 대립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의 경우는 시청 공직자들과 많은 부분 논의와 협력을 통해 영화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조직 운영의 문제나 행정 절차에 관한 문제들은 특히 그렇다. 또하나 새삼 놀라는 것은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제 업무 담당자들의 전문성과 지식 수준이 상당한 정도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모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직위원 가운데 영화배우 등은 부산영화제와 중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의 참여가 형식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바쁜 스케줄상 참석을 원활히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참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명도가 높은 영화배우 강수연 씨나 박중훈 씨의 경우 시간이 허용되는 한 피판을 위해 좀더 비중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을 정도로 매우 적극적이다. 스케줄 상 본의 아니게 드러나는 부분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부천영화제에 애정을 가진 영화인들이 많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특히 강수연 씨의 경우 1회 영화제 페스티벌 레이디를 맡았던 인연도 있어 부천영화제에 대해 각별한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러한 인물을 조직위원으로 위촉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덧붙여 영화제 때마다 페스티벌 레이디, 페스티벌 가이를 위촉해 홍보활동에 도움을 주어 왔는데 이들의 활동 역시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겠다.
▶활동계획과 목표는?
-피판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건실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단기적 목표이다. 그리고 우리 피판과 비슷한 규모의 예산으로 운영하면서 국제적인 평가는 훨씬 높은 타 영화제들(예를 들면 스웨덴의 예테보리 영화제 등)을 벤치마킹하는 일도 당면 과제이다. 장기적인 목표로는 앞으로 누가 피판을 담당해 이끌어가더라도 영화제가 잘 발전해 갈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우수한 시스템을 확립시키고 싶다.
▶부천시민들에게
-1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피판을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9회 영화제의 경우 ‘실패한 영화제’라는 생각 대신 “중단될 위기에서 우리 부천시민들이 구원해낸 자랑스러운 영화제”라는 쪽으로 인식을 전환하면 영화제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질 것으로 생각한다.
부천영화제는 시 예산만으로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국비, 도비 지원을 받는다. 따라서 지원 기관의 목적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제에 대한 부천시민들의 자발적이 참여와 자부심,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부천영화제가 국제적 위상을 가지면 부천시도 부천시민도 ‘영화의 도시’ 시민으로서 대접받게 된다. 실례로 베니스 영화제의 경우, 영화제가 시작되면 교통 불편, 혼잡함 등을 이유로 베니스 시민들은 다른 도시로 피해가지만 영화제를 없애자는 여론은 아직 없다고 한다. 실제로 베니스에서 만난 시민들은 영화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혹시 부천시민들 가운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 타 시·도 사람들에게만 좋은 일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속에서의 ‘부천’ 보다는 ‘세계 속에서의 부천’, ‘영화의 도시 부천’ 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부천을 바라봤으면 하고 다시 한 번 영화제에 대한 부천시민들의 애정과 관심을 요청 드린다.
한상준 집행위원장 프로필
▶1958년 1월 13일생
▶1992년 중앙대 대학원 영화학과 졸업(박사학위취득)
▶중앙일보사 출판제작국 기자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객원연구원
▶중앙대 영상대학원 교수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저서]
▶<로베르 브레송의 세계>(편저, 한나래출판사, 1999)
▶<영화음악의 이해>(한나래출판사, 2000)
[번역서]
▶<장 뤽 고다르>(예니출판사, 1991)
▶<현대 예술의 거장 10: 트뤼포>(을유문화사, 2006)
[연출작품]
▶ <M/T 교수의 외출>(2001년, DV 6mm, 20분, 각본 연출) 인디포럼 초청 상영, 부산아시아국제영화제 본선
▶<너의 이름은 아르헨티나>(2002년, HD, 30분, 각본 연출)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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