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설가 이상락, '고강동 사람들'의 작품 배경

부천시민신문 2006. 9. 1. 18:39
소설가 이상락, '고강동 사람들'의 작품 배경 
"항공기 굉음 속에서 문학을 부대끼다"

 

글쓴이 :유재근

 

8월 31일(목) 오전 부천 복사골 문화세타에서 소설가 이상락를 초청 그의 소설 '고강동 사람들' 모태 라디오 연속극 드라마를 중심으로 "항공기 굉음속에서 문학을 부대끼다"라는 제목으로 약 70여명이 모여 그의 강의를 청취를 하였다.

 

이상락은 많은 문인들이 보수적 성향을 띠지만 자신은 반골기질을 보이는데 이런 성향은 유년기에 결정이 되는 것 같다며 유년기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였다.

 

자신은 1954년 전남 완도의 아주 작은 섬인 생일도에서 가난하게 태어났기에 자신은 초등학교 6년 과정에서 한 권의 동화책도 읽을 기회가 없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입학하기전에 한글을 모두 익혔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문학적 소양을 키울 계기는 주어진 것 같다고 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피속에 유년기에 반항적 기질을 띠게 된 요소로 서너가지 이유를 대고 있다.

첫째는 5.16혁명후 박정희씨가 민정 이양을 약속했지만 윤보선과 대선을 치루는 가운데 마을 이장이 가가호호 돌며 우유 가루를 나눠 주는데 자신의 집만 빼놓고 주지를 않기에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나이 한 20살쯤 되면 그 이유를 알꺼라 했는데 동네 친구놈이 우유를 혼자 먹으면서 주지도 않고 혀로 날름거리는데 먹고는 싶고 당시 마음이 몹시 상했었단다.  

 

두 번째는 자신의 집 방에 벽지를 바르는데 벽지가 모자라 군데군데 신문지를 오려 붙였는데 자신이 누우면 바로 눈에 뜨이는 천정에 붙인 신문지 광고내용이 '여성의 매력은 정상적인 멘스에서'라는 문구를 지금껏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단다.

 

당시는 주로 '여자'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던지라 여성이란 표현이 고급 언어에 속했고 '매력'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말이었고 '정상적인'이란 단어도 초등교 1년 때에는 고급 언어에 속했으며 단지 '멘스'라는 단어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1학년 시절 이 문구를 쉬는 시간에 칠판에 적어 놓으니 선생님이 낙서로 알고 무심코 그냥 지웠었는데 2학년인가 3학년 때 당시 처녀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왔을 때 자랑 삼아 쉬는 시간에 자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예의 그 문구를 칠판에 백묵으로 쓰던 중 '멘스' 앞에서 백묵이 부러져 빨간 적묵을 주워 들고 '멘스에서'라고 문구를 마저 썼는데 그 날 부임해온 처녀 선생님에게 자신은 이유도 모르는 체 손바닥 30대를 맞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술시간인데 작은 섬인지라 매 학년마다 그리는 그림이 같은 갯바위에 앉아 바다쪽을 바라보고 푸른 하늘, 지평선의 돛단배, 갈매기와 파란 바다 모습인데 모든 학생이 천편일률적인 같은 모습의 그림이었는데 하늘과 바다를 크레파스로 파랗게 칠하는 바람에 항시 파란색이 동이 났었다고 한다.

 

자신은 이런 단조로운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가랭이를 벌리고 가랭이 속으로 바다 모습을 그렸는데 나중에 다 그리고 나서 보니 도화지를 거꾸로 돌려들고 보니 역시 같은 그림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도회지에 자신의 바지가랭이를 삽입시켰는데 당시 선생님은 미술점수를 후하게 70점 이상을 주는 편이었는데 선생님이 자신의 그림을 보더니 "어? 하늘에 돛단배가 매달려 있네."하시더니 자신의 엉덩짝을 보고 "이건 나무냐?" 물으시길레 "제 다리입니다."라고 하니 선생님 말씀이 "너 장난하냐? 미친 놈!"하시더니 45점을 주시며 '45' 밑에 두 줄을 박박 그으시면서 20분간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벌을 받았단다.

 

네 번째는 친구들간에 내기를 하는데 주로 물오리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들어 가서 몇을 헤알릴 때 수면 위로 나오는가를 시합하는데 하루는 혼자 학교를 가다가 자기 자신과 내기를 걸었는데 다시 말해 '23을 헤아릴때 물오리가 수면으로 나오면 '나는 앞으로 출세하는거야'를 마음속 내기를 걸었는데 물오리가 나오지를 않기에 아예 책보를 펼쳐 깔아놓고 앉아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학교를 갔는데 지각으로 역시 매를 맞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당시는 이해가 되지를 않아 자신은 반골기질로 되었노라 한다.

중학교는 강진으로 나와 통학을 했고 주로 연애소설을 엄청 많이 읽었는데 키스 장면 등은 접어 놓고 몇 번 씩이나 읽었었는데 나중에 장성해서 처가집에서 예전 보던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이란 책을 접하고 보니 당시 왜그렇게 이런 유치하고 조악한 글에 애끓이며 그리 열심히 애독을 했었나 실소를 하게 된단다.

 

자고로 돼지처럼 4다리 달린 짐승은 살이 찔 수록 보기 좋으며 남자는 학식이 많은 사람, 여자는 갓 결혼한 여인이 아름다운데 예전의 문인은 절대로 뚱뚱해서는 안되며 빵모자를 쓰고 술에 절은 기행으로 수척해 보이는 사람이 멋지게 보였다고 한다.

 

성직자도 수척해 보여야 엄숙해 보이고 요양소에서 폐결핵을 앓고 있는 여인은 수척한 모습에 뭇남성들의 보호본능까지 자극을 시키며 아름다움의 극치로 다가온다고 했다.

 

자신은 '소설이란 「포유동물의 절규」'란 정의를 내린 문인 천승세(千勝世)의 '포유동물의 육친애적 사랑없이는 소설에 범접하지 말라'라든가 '작가는 정명궤도에서 순교할 작정인 사람'이라는 차별적인 문인 정신도 존경하지만 요즘같은 컴퓨터 세대에서는 다자가 글 쓰기에 참여를 하고 있으며 뉴스 글에 대한 댓글(리플) 문화도 문학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며 두루 포용하는 자세를 취했다.

 

세간에 어른들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10권은 될거야'라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문학은 될 수없다고 한다. 살아 온 이야기는 마치 성냥개비 알 같은 것이고 성냥개비 알로 거북선을 만든다거나 집을 축조하는 창작력이 들어 가야 훌륭한 문학으로 태어 날 수있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재료를 가지고 창작력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군데군데에 에피소드가 들어 가야만 소설의 감칠 맛을 느낄 수있다고 한다.

 

자신의 소설 '고강동 사람들'은 자신이 유년기에 들었던 6.25뗘 자신의 섬마을에 미군의 오폭과 자신이 글을 쓸 당시의 이라크 걸프전에서 미군의 오폭, 그리고 김포공항 근처 부천 오정구 고강동으로 이사를 해서의 비행기 굉음에 시달림이 '고강 사람들'의 작품 배경과 구성 배경을 이루면서 문학세계로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소설에 쓸, '6.25때 미군 오폭', '이락크전 때 '미군 오폭', '고강동의 비행기 굉음'이라는 재료가 모두 준비 되어 있다 해도 "너 그 이야기 왜 하는데?"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준비는 작가의 몫일 것이다. 

자신은 내성적인 편이라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부인이 접한 정보도 많은 작품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비행기 소음으로 인한 하나의 에피소드를 든다면 선생님이 내일 숙제 (비행기 소음으로 안들린 부분 ; 안해오면 용서) 없다.라고 했는데 학생들은 '내일 숙제 없다.'로 들어 벌을 섰다는 실예이다.

 

소설에서는 우리나라 사투리도 한 몫을 하는데 '고강동 사람들'에 규섭의 노친이 시골에서 고강동 아들네로 제사를 지내러 왔다가 김포 공항에서 뜨는 비행기 굉음에 놀라 "호죽게다! 호죽게다!"를 외치며 평상 밑으로 숨는데 '비행기'를 규섭 고향에서는 '비행계'라 부르고 규섭 어머니는 '호주 비행기'가 공습하려고 한다라는 의미의 외침이다.

 

규섭 고향을 공습한 것은 호주 비행기가 아니고 미군의 오판으로 인한 공습이었으며 규섭 딸레미의 6.25때 우리 나라를 도와준 나라를 클레멘타인 곡에 맞춰 부르는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다. "미·영·오·캐·타·육해공군 보내고/프랑스·뉴질랜드·콜롬비아는 육해군을 보냈네~♪♬", 즉,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타일랜드를 의미한다.

 

'안덜센' 책 대여점에 대하여 시어머니가 '아, 안테나선!'으로 받아 들이는 것도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있고, 이승만 박사 부인 국적이 '오스트리아'인데 '오스트레일리아'로 오인하여 일어날 수있는 에피소드 하며 소설은 에피소드가 곁들여져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라디오 드라마는 텔레비죤 드라마 극본 글과 달라 정선 아리랑의 '수수밭 삼밭을 다지내 놓고선 빤빤한 잔디밭에서...'도 백만의 시청자가 텔레비죤 화면은 감독에 의해 송출된 한 영상만을 똑같이 보지만 라디오 드라마는 백만 독자가 백만가지의 자신의 경험상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키스라도 나눌려면 키 큰 수수밭에서 남이 안보게 은밀하게 제대로 사랑을 해야 하는데 삼밭도 좀 그렇긴 하지만 결국 좋은 시절 다 놓치고 남들이 훤히 다 보이는 잔디에서 그나마 불꽃을 튀겨 보려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결국 소설을 쓴다는 것은 우리네 삶을 독특한 몇 가지를 골라서 표시 안나게 땜질을 잘해서 하나의 유기체가 되도록 창작력을 가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